34세 교수는 알파벳이 큼지막하게 새겨진 티셔츠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복장이 자유로워 보인다”고 하자, 그는 “(수업 때) 춤을 춰야 하니까”라며 싱긋 웃었다. 서울종합예술학교 최종환 교수(무용예술학부 스트릿댄스학과)는 ‘교수’보다 ‘댄서’ 직함을 선호한다.
실제 최씨는 한국 힙합댄서 1세대로, 인기 댄스그룹 2AM과 2PM을 가르친 춤 스승이자 세계 각종 스트릿댄스 대회를 휩쓴 춤꾼이다.
그런 그가 지난달 힙합 댄스를 주제로 세종대(무용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제목은 ‘한국 힙합댄스의 발전과정과 가치인식’. 이런 박사논문이 나온 것도, 원조 ‘비보이’가 비보이와 힙합을 연구해 박사가 된 사례도 국내 처음이다.
“‘날라리’ ‘노는 애’라는 말 숱하게 들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엄연히 대중예술의 한 분야인데 왜 이렇게 천대받아야 하나 싶었죠. 제도권에서 학문화를 통해 이 일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었어요.” 그가 논문을 쓴 이유다.
최씨가 처음 춤을 접한 건 10살 때.
댄서인 친척 형이 전신거울 앞에서 현란한 웨이브와 꺾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신세계와의 조우였다. 중·고교 시절 내내 춤에 미쳐 지냈다.
고교 시절 그는 이미 H.O.T. 전 멤버 강타, 문희준 등과 함께 ‘송파동 춤꾼’으로 통했다.
좋아서 무작정 췄던 춤을 인생 목표로 정한 건 고3 때. “아버지가 엄해서 공부도 꽤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그냥 이대로 서울 중위권 대학에 진학해 평범한 회사원이 되면 행복할까’ ‘내가 남들보다 뛰어난 게 춤인데 잘하는 걸로 최고가 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남들이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만큼 춤에 투자한다’고 결심하고 동네 에어로빅실을 빌려 새벽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연습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자주 드나들던 이태원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미국 최신 힙합 음악을 들으며 본고장 유행을 익혔다.
“그래도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된다” “중국어가 앞으로 비전이 있다더라”는 가족 충고에 따라 남서울대 중국어과에 입학했지만, 춤을 향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모은 돈을 털어 라스베이거스와 뉴욕을 오가며 ‘뉴스쿨 힙합의 창시자’라 불리는 엘리트 포스, 마이클 잭슨의 춤 선생이었던 일렉트릭 부갈루스 등 최고 힙합 댄서들을 무작정 찾아갔다.
“춤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고, 운이 좋아 일주일씩 홈스테이하며 지도받을 기회도 가졌다.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춤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세종대 무용학과에서 실기 시험을 봤다.
타이즈 입고 고전 무용을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최씨는 청바지를 걷어 올리고 힙합을 췄다.
당황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던 교수는 춤이 끝나자 이렇게 물었다. “…품행은 방정한가?”
그럼에도 힙합댄스를 포기하지 못한 것은 그 자유로움 때문이다.
최씨는 “춤을 출 땐 나 스스로와 대화하는 느낌”이라 했다.
“비보이들이 댄스 배틀을 할 때 가끔씩 상대편을 향해 두 팔을 아래위로 포개는 동작을 취할 때가 있어요.
‘너, 남의 동작 베낀 거지?’라는 뜻인데, 상대에게 엄청난 모욕이죠. 늘 새로운 것, 신선한 것을 추구하는 정신과 즉흥성이 사람을 매료시킵니다.”
전문성과 실무 경험을 인정받아 2006년부터 서울종합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그는 “요즘 10대, 20대의 테크닉이나 배우는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면서도 “아직 이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점은 안타깝다”고 했다.
“예전엔 서양의 춤과 음악을 우리들이 따라 했지만, 지금은 거꾸로 K-Pop을 미국·유럽에 수출하고 있잖아요. 한국식 힙합 문화와 비보이들도 공헌했다고 생각해요.
스트릿댄스를 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스스로 평가절하하지 말고, 대중문화 생산자로서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